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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주 : 최송설당 할머님 (1855-1939)

평생 모은 전재산 32만 2천 1백 원을 1930년 김천고보 설립에 선뜻 내 놓은 여장부, 최송설당, 그 당시 13원이면 쌀 한 가마니를 살 수 있었으니 그녀가 내 놓은 32만 원이란 돈은 요즘 돈으로 계산하면 무려 45억이 넘는 거액이었다. 그 돈은 그녀가 환갑이 지날 때까지도 밥상 앞에 앉으면 집어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절약해서 모은 귀중한 것이었다.


그녀가 일생을 재산 모으는 데 바친 것은 그 집안이 지닌 내력 때문이다. 그녀의 선조가 18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역적의 누명을 쓰게 되면서 집안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증조 할아버지는 옥에서, 할아버지는 유배지에서 죽고, 그녀의 아버지 최창환은 근근이 글 방 선생 노릇을 하며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철종 6년에 아들 하나 없는 집안의 맏딸로 태어난 최송설당은 어릴 적 아버지가 탄식하는 집안의 내력을 듣고 비록 딸이지만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 드리고 가문의 명예를 되찾겠다고 결심했다. 이때부터 그녀는 부모를 봉양하며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다. 남의 집 삯바느질을 해주고 받은 품삯으로 손바닥만한 밭뙈기를 장만하고, 그것을 다시 마당만한 논으로 불리면서 재산을 모았다.


1901년 영친왕의 생모로 고종황제를 가까이 모시던 엄비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던 그녀는 , 엄비의 도움으로 고종의 특명을 받아 원통한 가문의 누명을 벗길 수 있었다. 그 뒤 그녀는 그 동안 땀흘려 모은 돈으로 각처에 흩어져 있는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가 비석을 세우고 일가 친척에게 전답을 나눠주는 등 가문을 일으키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런데 당시 제대로 된 교육기관 하나 없던 김천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고등보통학교(지금의 중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에 김천 유지를 중심으로 10년간 '30만 원 모으기 운동'을 벌였지만 쉽지 않았다. 아무리 큰 부자도 돈 천 원을 내기가 어려울 만큼 가난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천 사람들은 일평생 모은 전 재산을 고스란히 헌납한 그녀를 경상도 최대의 사회사업가이자 여장부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최송설당문집' 3권 3책을 발간하여 세계 각국도서관에 보냄으로서 국문학상에서는 문인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송설당'이라는 자호는 "삼동에도 타고난 성품을 더럽히지 않는 자로 물중에도 설중의 송이 있는 까닭에 외람됨을 무릅쓰고 이로써 호를 삼는다'라는 의미가 있다 한다.


최송설당은 85세를 일기로 조용히 눈을 감았는데, 장례식에는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김천고보는 1951년 김천고등학교를 설립 인가를 받은 뒤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최송설당의 뜻을 기리는 의미에서 1981년 <송설 50년사>, 1991년 <송설 60년사>를 펴내기도 했다.

          

 

□ 최송설당(崔松雪堂) 소개

1855년(철종 6년)8월29일 김산군 군내면 문산리(김천시 문당동)에서 지남거사(枳南居士) 최창환(崔昌煥)과 후취(後娶)정씨 사이에서 무남삼녀로 태어났다.


여사의 아버지 지남거사(枳南居士)는 서당 훈장으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항상 외다시피 선조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 가문을 예와 같이 빛내야 한다는 말을 6세의 어린나이에 이해하고 스스로 맹세했다.


송설당(松雪堂)의 성(姓)은 최씨요, 본적은 화순(和順)이다. 장하면서도 순하고 엄하면서도 굳세고 너그럽고도 도량이 넓으며 강개하여 엄연한 대장부의 기상이 있었다. 정정한 기상과 표표한 태도는 또한 청송(靑松)과 백설(白雪)에 비할 만하여 세인이 송설당(松雪堂)이라고 호(號)를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송설당(松雪堂)의 생애를 연도별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 1860∼1870

:

집에서 부친으로부터 한학과 한글을 수학함.

- 1882. 3. 10

:

종제(從弟) 광익(光翼)을 계자(系子)로 맞음

- 1886. 6.  9

:

부친 창환이 별세하여 함평까지 5백리길을 운구하여 장례를 지냄.

- 1912. 8

:

무교동(武橋洞)에 저택(邸宅)을 건립하고 옥호(屋號)를 송설당(松雪堂)이라 현액(懸額)했다. 송설당(松雪堂)은 처음에는 당호였는데 뒤에는 당신(當身)의 호(號)로, 나아가서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 1917년

:

모부인(母夫人) 정씨 별세 "정재(淨財)를 육영(育英)에 써라"는 유훈이 계셨고 이때부터 생활비까지 줄여가며 뒷날의 큰일을 대비함.

- 1922. 12. 1

:

자저(自著) '최송설당문집' 3권 3책을 발간하여 세계 각국도서관에 보냄

- 1930. 2. 25

:

동아, 조선 등 전국 일간지에 학교설립을 위한 전재산 30만2천백원을 희사할 취지를 밝힌 성명서를 발표함

- 1930. 4.  1

:

김천고등보통학교후원회조직

- 1931. 2.  5

:

재단법인 송설당교육재단 인가됨. 설립자 최송설당

- 1931. 3. 17

:

교장제정(校章制定)

- 1931. 3. 30

:

초대교장 안일영(安一英) 취임

- 1932  1.  8

:

교가제정(작사 정열모, 작곡 현제명)

- 1932. 8. 31

:

본관교사 신축

- 1934. 5.  9

:

응원가 제정(정열모 작사, 김호룡선곡)

- 1935  1.  5

:

기숙사 신축

           5.  9

:

교기제정(청송백설기)

          11. 30

:

개교기념식 및 교주동상제막식거행

- 1939. 6. 16

:

교주최송설당여사 영면(永眠)

- 1939. 6. 22

:

교주 학교장엄수(學校葬嚴守) 묘소는 송정뒤

- 1945. 6

:

교주동상 금속공출로 강제 철거당함

- 1950. 6. 16

:

동창회에서 교주동상 재건

- 1963. 8. 15

:

대한민국대통령으로부터 문화포상 받음

- 1981. 5.  9

:

송설동창회에서 교주흉상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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